[한류지르잡기 06]한류가 죽어야 한류가 산다 – 블루에이지(BLUEAGE) 사업영역

[한류지르잡기 06]
한류가 죽어야 한류가 산다

한류지르잡기

지난 수년 동안 인도,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중국, 파푸아뉴기니 등의 도시와 오지를 여행하며 느낀 것은 한국을 향한 현지인의 무조건적인 맹신과 환호에 대한 낯설음과 놀라움이었다.

한번은 파푸아뉴기니를 돌아보는 여행 중 원주민 학교의 교장선생 집에 식사를 초대 받은 적이 있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은 원시의 깊은 정글, 석유나 태양열로 초저녁시간 잠깐 동안 전기를 사용하는 곳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13인치 남짓 되어 보이는 위성 TV앞에 모여 들었다.

잠시 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TV에서는 인도네시아어로 더빙된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접근조차 어려운 원시의 정글인 파푸아뉴기니의 외딴 지역에서 TV앞에 모여 앉은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에 몰입해 있는 것은 반가움을 넘어 신기한 장면이었다. 파푸아뉴기니 정글에서 <대장금>의 이영애를 보고 있다니!

드라마에 등장한 한국의 연예인들은 파푸아뉴기니의 정글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당시 이와 같은 현상은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베트남 심지어는 중동지역에까지 다를 바 없는 현상이었다. 이들 나라에서 한국 드라마는 평균 30%에서 40%, 많게는 50%이상의 시청률을 올렸다. 한국 드라마의 방영은 시청률과 광고수익 나아가 방송국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정도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말 그대로 한류 ‘열풍’이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이와 같은 한국 드라마에 대한 사랑은 한국제품이나 한국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인도네시아 중부의 한 섬에 잠깐 체류했을 때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한국 차가 일본차 보다 좋다는 논리가 일반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왜 한국 자동차가 좋은지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면 특별한 이유가 없다. <대장금>이나 <김삼순> ‘전지현’ ‘윤은혜’ ‘비’가 좋고 그들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 차가 좋다는 논리다. 여기서는 한국 자동차가 얼마나 부품이 공급이 잘되는지 얼마나 내구성이 강한지, 일본이나 독일 자동차에 비해 성능은 어떤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판단과 평가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동차의 내구성이나 디자인은 선택의 기준이 아니다. 현대나 기아의 로고가 있는지. 내가 타고 있는 중고차에 한글이 얼마나 돋보이게 많이 쓰여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사랑하고 동경하는 배용준과 대장금의 나라에서 만든 차가 더 좋고 훌륭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 나라도 한국처럼 일본에 식민지 지배를 받았으며, 일본군들에게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이 동일한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들에게 한국과의 동일시의 정서를 가져도 된다는 충분한 근거가 되고 있었다. 한국과 독립기념일이 같다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 이는 한류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한국에서 온 구호품에 한국어가 쓰여 있는 것은 자랑거리고, 중고차에 한글이 쓰여 있는 것을 일부러 지우지 않는다. 이렇게 이들은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입고, 타고 살아가며 한국에 대해 동경한다. 경제적으로 학문적으로 꼭 필요하지도 않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생들도 여럿을 만났다.

한국 드라마를 접한 사람들은 한국의 남성들은 모두 <가을동화>의 배용준과 같이 사려 깊고 따뜻하다고 느끼며 한국의 여성들은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엽기적인 그녀>의 주인공처럼 솔직하고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에게서 그런 감흥과 감정을 느끼길 원한다.

일부 사람들은 일본차에 현대로고를 붙이고, 일본산 중고차를 조립하고 현대차의 핸들을 붙여서 한국산 자동차라고 자랑했다. 심지어는 일본산 혼다자동차를 발음이 비슷한 현대(현다이)자동차라고 생각하며 한국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공항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한국은 좋고 일본은 나쁘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한국을 향한 무조건적인 ‘특급사랑’이다.

 

한류가 죽어야 한류가 산다

드라마에서 화투치는 장면을 보고 한국에 가는 관광객에게 화투를 사다달라고 하고, 한국인에게 화투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대만의 여대생. 한국남자들은 모두 태권도를 잘한다고 믿는 필리핀 사람. 한국에서 여자들은 모두 대장금드라마에서처럼 한복을 입는다고 생각하는 인도네시아 회사원.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림 같은 저택에 살고 남자들은 잘생겼고 사려 깊다고 생각하는 베트남 아가씨. 이처럼 한국에 대한 그들의 가치와 감각,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상의 한 공간에 한류가 버티고 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강한 흐름을 갖는다. 그 흐름은 어떠한 논리로도 보편화 시켜 이야기 할 수 없는 맹목적인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런 근거나 판단의 기준 없이 텔레비전 영상이미지를 통해 한국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노래가 그들에게 친근하면 할수록 한국에 대한 왜곡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그 실체가 밝혀질 때 갖게 되는 상실감 또한 더욱 커진다.

이제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가요들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니라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체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속히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들을 제공하고 한류가 갖는 이미지만큼이나 한류상품과 한류를 즐기는 시민의 의식 수준 또한 그러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 K-POP의 경제적 이익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품격 높은 문화와 정치, 사회에 대한 경쟁력 제고에 대해서도 성찰의 목소리를 내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 정부와 한류의 생산자들 모두 건강한 방향성과 의도를 가지고 한류를 활용해야 한다.

 

한류(寒流, cold current)를 경계하며…

TV 드라마가 한류의 시발점이었다면 K-POP은 세계 속으로 新한류를 확장하고 있다. 한류의 금자탑이 높아질수록 드리워진 그림자도 깊어질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한류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국가들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개인과 세력들에 의해 한류가 공격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과 한류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맹목적인 이해는 풀면 되지만 한류의 윤리나 구조적 관행, 비상식적 연예 제작 시스템 등은 결과적으로 한국에 대한 배신과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 수 있다.
‘겉은 노랗고 속은 희다’는 의미로 한국인을 바나나와 같다며 비아냥거리는 말이 있다. 방향성 없는 한류, 정의와 윤리가 없는 한류, 진정성이 없는 허상만 지속된다면 오히려 바나나와 같은 이미지로 한국에 대한 거부감을 고착시킬 수 있다.

한류를 통한 문화적 주동력과 영향력을 갖는 것 이전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이 중요하다. 한류 팬들에게 불편한 진실 따위는 없어야 한다. 무대의 화려함 뒤에 꼬이고, 터지고, 어둡고, 절망스런 모습같은 것 말이다. 더불어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고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막무가내도 한류로 인해 만들어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훼손하고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대형 연예기획사의 횡포, 연예인 성 접대 행태, 불공정 노예계약, 왜곡된 인터넷 문화 등은 한류를 좌초시킬 암초와 같다. 특히 미디어가 자의적 권력을 행사하며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이권에 결탁한다면, 상업주의적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정치와 자본의 영향력으로 부터 단호함이 없다면, 구조화된 관행과 커넥션을 잘라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은 더 이상 희망을 내다볼 수 없다.

‘의리’, ‘보은’, ‘은혜’ 등의 명분을 내세우며 스타의 권리를 박탈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대형화된 연예산업과 수직계열화로 인한 자본의 독점과 전횡은 연예계의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곡된 한류(韓流 Korean wave)가 멈추지 않는 한 언젠가 냉담한 한류(寒流, cold current)에 휩쓸려 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김현청 brian@hyuncheong.kim
–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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