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Movie List, 재즈, 바로 그 순간 – 블루에이지(BLUEAGE) 사업영역

Jazz Movie List, 재즈, 바로 그 순간

이름 모를 재즈곡들을 엠피쓰리에 잔뜩 넣어 다닌 적이 있다.
카페에 혼자 있을 때,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혹은 버스에서도 재즈를 들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재즈는 다른 무언가에 몰입하는데 유용했다는 것. 재즈는 내게 편안한 음악이었다. 듣기에도 편하고 기분 좋을 뿐 아니라 리듬과 선율은 흥겹고도 감미로웠다. 한참 듣다가도 어느새 그 존재가 잊혀 내 무의식에 흐르는 선율이었다. 재즈는 나를 해방시켜주는 듯 했다. 재즈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어깨가 들썩이는 재즈부터, 고혹적인 사랑의 선율을 표현하는 재즈, 삶의 열정과 고난이 녹아든 뭉근한 재즈까지. 재즈는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사로잡는다.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까지.

재즈의 바로 그 순간들을 담은 영화를 소개한다.

 

#1

재즈, 유쾌하고 매혹적인 순간

치코와 리타 Chico & Rita, 2010

하비에르 마리스칼 ,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감독, 베보 발데스 음악

그는 피아노를 치고, 그녀는 노래한다. 그 때가 아마 그들에게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치코와 리타>는 천재 피아니스트 치코와 매혹적인 가수 리타의 사랑을 그린 재즈애니메이션이다. 재즈음악의 변혁기였던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를 초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시종일관 재즈와 결을 함께 한다. 치코가 하바나의 어느 재즈바에서 리코의 매혹적인 음색에 사로잡힌 첫 만남에서부터 질투와 오해로 인해 이별을 맞고 난 이후까지 꿈과 사랑을 좇는 그들의 이야기는 애잔하고도 아름답다. 라틴 풍이 짙게 묻어나는 색채, 둥글고 우아한 그림체는 과거 쿠바 하바나의 거리와 뉴욕, 파리, 할리우드, 라스베가스의 풍경을 잘 묘사할 뿐 아니라 캐릭터들의 섬세한 행동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아름답고 고혹적인 라틴재즈의 선율은 눈을 감고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하는데, 치코의 실제 모델인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Bebo Valdes)가 직접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고 한다.

 

스윙걸즈 Swing Girls, 2004

야구치 시노부 감독, 우에노 주리, 히라오카 유타 外 주연

친구와 스윙만 있다면 OK! <스윙걸즈>는 어쩌다가 ‘재즈의 맛’을 알아버린 여고생 13인의 좌충우돌 재즈 도전기를 담는다. 자신들이 전해준 도시락을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린 합주부를 대신해 급조된 낙제 여고생 밴드. “밴드 좀 해볼까.” 하는 찰나에 완쾌한 합주부원들이 돌아오고 여고생들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미 재즈의 매력에 빠져버린 그들은 자신만의 밴드인 ‘스윙걸즈’를 만들고 이를 지켜내기 위해 함께 힘을 뭉친다. 악기 구입을 위해 기상천외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연습장소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스윙의 흥겨움처럼 코믹하고 유쾌하다. “뭐든 재즈가 될 수 있어.” 서툴지만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그들의 스윙을 들으면 정말 그런 것 같다. 함께 리듬을 맞출 친구만 있다면, 뭐든 재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에 펼쳐지는 스윙걸즈의 재즈무대도 놓칠 수 없다.
*스윙(swing)은 ‘흔들거리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재즈음악 특유의 몸이 흔들리고 있는 듯한 독특한 리듬감을 말한다. 재즈 연주스타일 중 하나인 ‘스윙재즈’는 1930년~194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재즈의 붐을 일으켰다.

 

 

#2

광기, 혹은 구원
재즈가 삶을 사로잡는 순간

위플래쉬 whiplash, 2014

다미엔 차젤레 감독,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주연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는 이름의 광기. 천재들의 열정, 한계를 넘으려는 집착.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광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기 한 제자와 스승이 있다. 흔히 사제지간이라 하면 이끌어주고 따르면서 형성된 따뜻한 신뢰를 떠올리지만 그들의 관계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폭언과 학대로 점철된 그들의 관계는 신뢰가 아닌 다른 것, 바로 음악으로 묶여져 있다. 학생이 한계를 뛰어넘게 하기위해 폭력에 가까운 교수법으로 그를 채찍질 하는 교수와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과 교수에 대한 오기로 드럼이 피범벅이 되도록 연습하는 학생의 대결은 질주하는 듯 연주되는 다양한 드럼음악과 함께 영화전체를 장악한다. 아프로 쿠반 재즈의 대표곡 ‘카라반’(Caravan)을 비롯해 버디 리치(Buddy Rich)의 ‘캐시즈 송’(Cathy’s Song), 스탄 게츠(Stan Getz)의 ‘인투잇’(Intoit)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도나 리’(Donna Lee) 그리고 영화 후반부 반전을 담당하는 명곡 ‘업스윙잉’(Upswinging) 까지 재즈의 명곡으로 가득한 OST도 영화의 몰입감을 더한다. 음악에 사로잡힌다는 것,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치며 불태운다는 것, 방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토록 몰입할 수 있는 그들의 열정이 조금 부러워진다.

 

레이 Ray, 2004

테일러 핵포드 감독, 제이미 폭스 주연

그래미상을 수상한 전설적인 재즈음악가 레이찰스의 실화. 재능은 때로 인간을 타락시키기도 하지만 구원으로 향하는 빛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술에 대한 광기로 삶을 망쳐버린 천재들의 이야기도 많지만, ‘레이’에게 음악은 암흑과 절망 속에서 붙잡을 단 하나의 빛이었다.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찾아온 시각장애, 흑인이라는 편견. 타고난 재능에도 성공을 점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레이는 가스펠과 블루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음악으로 성공을 붙잡는다. 하지만 준비 없이 맞이한 성공이기 때문일까. 발매하는 음반마다 히트시키며 음악인으로 잠깐 성공하지만 불륜을 저지르고 마약에 손을 대는 와중에 성공은 신기루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최고의 순간 바닥으로 추락한 그. 가정은 깨어질 위기에 불륜을 저지른 애인은 마약중독으로 죽고 그 자신도 마약의 늪에서 벗어나질 못한 채 방황한다. 암흑 속에 고립된 철저한 외로움과 6살에 목격한 동생의 죽음에서 비롯된 공포는 서서히 그의 영혼을 잠식해나가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음악은 빛이 되어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절망과 분노, 슬픔까지도 음악으로 승화해 노래했던 레이찰스의 음악. 사연을 알고 듣는 OST는 조금 더 특별하다.

 

#3

삶이 녹아든
공연의 순간을 기록하다

브라보 재즈 라이프 Bravo! Jazz Life, 2010

남무성 감독, 강대관, 이판근, 조상국, 류복성, 김수열, 이동기, 김준, 박성연, 최선배, 강태환, 신관웅 주연

다시 한 번 뭉쳐볼까, 재즈 1세대 마지막 공연의 기록. 누구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끝에 가까울수록,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을수록 그리운 것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듯 느껴진다. 사라진 것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 그 가운데 열정이 있다. 열정이 때론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은 그 때문이다. 재즈 1세대. 50년대 후반 주한미군부대의 무대에서 활동하던 그들에게 재즈는 청춘의 열정 그 자체였다. 국내 최초로 재즈이론을 가르쳤던 ‘이판근연구실’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과거를 더듬듯 함께 연주하던 동료를 찾아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과거의 열정, 그들의 청춘을 붙잡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을 불가능하다. 때문에 사라진 것을 돌이키려는 것은 부질없다. 하지만 연구소가 철거되기 전 한자리에 모여 생애 마지막인지도 모르는 공연을 준비할 때 그들이 느낀 것은 그 예전 풋내 나는 열정이 아닌 50년 그들의 삶을 담은 진한 재즈, 그 음악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었다. 동료를 찾아가고 공연을 준비하는 몇 개월 그들을 기록한 다큐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음악은 그들의 삶을 담아내 더욱 진해지고 다시금 돌이킨 아니 다시 한 번 발견한 그들의 열정은 그들이 살아낸 시간의 무게만큼 벅차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빔 벤더스 감독, 콤파이 세군도, 엘리아데스 오초아 주연

흥겨운 쿠바음악에 녹아있는 문화와 삶의 기록.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먼 곳일수록 사고방식과 관습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를 넘어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고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라난 음악에 대해서도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쿠바와 영국은 지리적 거리만큼 사회체제도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1999년, 쿠바음악이 영국을 휩쓸고 강렬한 열병처럼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는 쿠바음악에 심취한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가 쿠바의 도시 아바나로 가 숨은 고수를 찾듯 실력 있는 쿠바의 뮤지션들을 모으는 데서 시작한다. 한때 중남미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소리소문 없이 흩어져 늙어가고 있던 뮤지션들은 빛이 바랬던 쿠바음악처럼 잊혀 있다가 다시 불려나와 먼 곳의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영화는 구두닦이로 전전한 가수 이브라임 페레(Ibrahim Ferrer)부터 한물간 기타리스트 콤파이 세군도(Compay Segundo) 등 각 멤버들이 각자의 삶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와 콘서트 실황 장면이 교차되어 진행된다. 음악과 예술은 사람들의 삶에서 자라난 문화라는 토양에 뿌리내려 꽃피우는 것인 만큼 삶과 문화가 녹아난 쿠바의 음악은 흥겨운 이면에 짙다. 쿠바인들의 문화와 삶에 대한 이해도 함께 엿볼 수 있다.

 

 


김현청 /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mail: brian@hyuncheo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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